::
페이지 정보
서예민 작성일26-06-16본문
알바트로스 토목업계를 정복하다 (51 ~ 71) 겨울은 반듯이 봄을 데리고 온다제오십일(51) 2001년 6월 그늘진 그림자를 해빛으로,.... 꿈이 현실로,....첫 해외여행01년 6월 18일 서울- 방콕- 풋켓- P,P섬01년 6월 21일 P,P섬- 풋켓- 방콕- 서울2001년 6월 17일 14시 30분 중동집을 떠나 효성동으로 왔다. 오늘이 일요일기도 하지만 내일 7시 30분엔 인천 공항으로 가야 했기에 미리 효성동 APT로 왔다. 그런데 내 여행가방에 경혜엄마 이름이 붙혀 있는 택크를 보고 무척 서운해 한다. 미리 제거 했어야 했는데 미쳐 생각을 못했다. 왜 난 당신에게 이런 대접을 받으며 살아야 하느냐고 하며 누구는 해외여행을 갈때마다 따라다니고 난 지금까지 한번도 그런적 없었는데,..그럼 나는 뭐냐고 하며 무척 서운해 한다.2001년 6월 18일 월요일 07시 30분 인천공항으로 출발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짐도 챙기고 외국가면 한식이 생각나기에 된장국을 끓어 먹고 일찍 암치 공항으로 출발했다.10시 30분 장기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약속장소인 L카운터로 왔다. 하나투워 직원을 만나 비행기 티켓을 받아 모든 출국수속을 마치고 면세점으로 들어왔다. 영곤이 엄마는 해외를 처음 나가는 길이라 긴장된 모습과 상귀된 얼굴이 무척 기뻐하는 모습이 역역하다. 처음 보는 면세점이라 무척 신기하고 놀라는 눈치다. 젊디젊은 사람이 나만 보고 산다고 생각하니 언제나 불쌍하고 미안하게 생각이 들었다. 어찌다 내가 이렇게 두 사람에게 못쓸 죄를 지어 항상 후회하며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래서 난 두 사람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더욱 더 조심하고 잘 해주려고 노력하고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언제나 용서를 빌고 있다. 내가 지은 죄로 인하여 두 사람이 힘들지 않게 해달라고 항상 기도하고 있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 내 입장을 이해 해 달라는건 더욱 아니다. 말도 안된 말이지만 내 입장을 조금이라도 생각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지금 와서 어느 한쪽을 버리거나 돌보지 않는다면 버린 한 쪽은 어찌 되겠나? 이런 틈 바구니 속에서도 영곤이는 무럭무럭 잘자라고 있다. 언젠가 영곤이 엄마가 고촌에서 있을 때 한 때 위기를 만났으나 내 이야길 잘 듣고 순종함으로 성령님이 찾아 주셨고, 마지막 나에게 최고의 선물로 하나님이 영곤이를 주셨다.하나님의 선물, 잊저서는 안될 축복오래전에 이야기다, 그녀가 한 때 방향 하고 있을때 그를 만나 나의 입장과 처지를 알아 듣게 타이러자 고개를 꺼덕이며 알았다고 하더니 그 날 이 후 모든 그릇된 행동들을 칼로 무우 짜르듯 짤라 버리고 새 사람이 되었다, 때 마침 성령님이 역사하셔서 옆집 집사님을 통해 예수를 믿게 하였고, 그녀를 성령님이 감동시켜 세광교회로 인도 하여 주었다. 그 후 그녀는 교회를 열심히 나가더니 세례를 받고, 어느날 담임목사님을 찾아 뵙고 간곡히 부탁 드리길 아들 하나만 선물로 주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달라며, 나에게 착한 아들 하나만 선물로 주신 다면 그 아들을 주안에 잘 키워 주님께 영광 돌리는 아들로 키우겠습니다"라고 약속 했다는데 그 후 응답을 받아, 나이 29살, 즉 1990년에 임신을 하여 아들을 얻었다. 그 녀는 모든 결심이 대단하여 어떤 일에나 한번 마음 먹어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다. 그녀는 하나님과 약속을 하고, 교회 청소며 교회 식당일이며 노방 전도까지 열심을 다해 주를 섬기며 봉사를 했다. 그 후 우린 서로 믿고 의지하며 살기로 약속하고 동리 어른들과 친척들 200여명을 모시고 초촐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예식을 마치고 우리 관계를 모르는 큰 동서 내 외와 처남네 가족들은 제주도로 신혼여행 계획을 세워 놓고 같이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1992년 4월 15일에 하나님이 주신 선물, 귀한 영곤이가 태어 났다. 그런데 그 해에 내신상에 큰 이변이 있었다, 두성건설(주) 사장이 회사가 날로 발전되고 안정이 되자 영업 스타일(정도인 기술 영업으로 안 하고 돈이나 힘있는 사람에게 로비로 접근하는 영업) 를 바꿔 회사를 운영하고자 함으로, 누차 이러면 문제가 있으니 안된다고 충고를 드렸으나 말이 안통하지 않아 결국 나는 사직을 하고 동원기초(주)부사장으로 영전을 했다. 내 나이 45세때 일이다. 그리고 영곤네는 하나님의 축복속에 1995년도에 인천 뉴서울 APT 602동 1111호로 이사를 하여 그곳에서 3년을 살다가, 어느날 영월출장을 같이 갔다 오면서 신문을 보니 IMF(외환) 위기로 온 나라가 쑥밭이 되어 자고 나면 실업자가 쏟아지고 APT와 부동산은 급매물로 쌓였다, 그녀는 아버지가 물려준 부동산을 담보로 하여 돈을 빌린다음 저축한 돈을 모두 찾아 목돈을 마련하고, 준공 된지 채 1년도 안 된 효성동 태산 APT(104동 702호 50평)가 급 매물로 나온 것을 지금 사는 APT를 넘겨 주고 차액은 차차 갚는 조건으로 막 교환을 하여 태산 APT로 이사를 하였다, 그 후 외환위기가 안정되자 입지가 좋은 태산 APT값은 크게 올라 큰 수익이 생겼다, 그리고 또하나 저축한 나머지 돈을 찾아 월곳에다 33평 APT을 매입하여 휴일에 쉬는 별장으로 삿는데.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주택 값이 하락되어 앞으로 APT값이 어떻게 될지 한치 앞이 안 보이자 해약하기로 하고 인혁이 아버지랑 큰 이모를 동원하여 14,000,000원 손해를 보고 간신히 해약했다. 그 후 그곳을 지나다 보니 월곳 APT는 건설도 못하고 방치 해 둔걸 보니 해약을 잘 한건지? 못 한건지 알 수가 없다.6월 18일 11시 11분 게이트로와 탑승을 했다. 해외 첫 나들이영곤이 엄마랑 영곤이를 다리고 해외여행을 오늘에야 떠난다. 해외를 날갈때 마다 곤이 엄마 보기에 미안했는데, 지금에야 떠나게 되었다. 이젠 미안한 마음를 조금은 갚은것 같다. 셋이서 나란히 앉아 해외를 간단는게 너무나 행복하다, 간밤엔 어린아이 소풍가는것 처럼 흥분되어 잠을 설쳐는데 잠을 자려고 눈을 깜고 있으니 지난 날들이 주마등 처럼 펼쳐진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이들과 해외여행이 오늘에야 시작 된다 생각하니 그간 얼마나 미안하고 불쌍 했는지 모른다. 지금까지 같이 나간다 나간다 하면서도 생각 뿐이고 기회도 없었다. 그렇지만 영곤이 엄마는 단 한번도 불평하지 않아 더욱 미안 했었다. 은성기초(주) 입사전에 한번 해외라도 다녀 오리라 생각 했는데 은사장이 같이 한번 바람이라도 쒸우고 돌아와 열심히 일 해달라고 하면서 해외로 나가게 되었다. 이 모든것이 하나님의의 은총 속에 이뤄졌으니 너무나 감시하다.11시 49분 주마등 같이 지나간 세월을 적다 보니 끝이 없구나. 지나고 보니 엄청난 실수를 한걸 았았다. 난 두 사람에게 너무나 못쓸 짓을 했다 이렇게 착하고 나 밖에 모른 사람들을 , . .사랑에 진빚은 어떻게 ?앞 뒤를 가리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던 철없는 두사람은 결국 상상도 못할 일을 저질려고 말았다. 우린 아무 대책도 없이 럭키타운 303호에 신 산림을 차렸다. 이곳은 너무나 조용하고 한적한 외각지대다. 창문을 열고 보면 김포공항에 비행기가 이 착륙 하는게 눈앞에 보였고, 베란다 창문 바로 밖앗 논에는 봄이면 개구리가 잠을 깨운다. 그리고 언덕 넘어 들녁에는 냉이와 달래가 지천에서 손짖한다. 푸른 들판에는 벼가 자라고, 휘엉청 달밝은 밤이면 고항생각이 절로나게 한다. 그런 시절이 어연 16년전, 봉천동에서 T,V와 전축도 사고. 87년 12월12일에는 아현동에서 장농과 침대도 삿다, 그땐 우리가 이렇게 까지 될 줄 꿈에도 생각지 못 했다. 그런데 맺어진 연은 사람의 힘으로론 끊을 수가 없는가 보다. 도리킬 수가 없는 먼 강을 건너 고야 말았으니. 경혜엄마 미안해요 당신을 힘들게 한건 두고 두고 깊을께요"영곤이 엄마 당신에게도 미안해요 이런 무서운 멍에를 당신에게 지게하여 정말 미안해요 젊디 젊은 당신이 나 하나만을 바라 보며 아픔을 곱씹어면서 혼자서 이고 지고 살게 한다니,.. 이조시대도 아니고 요즘 세상에 자기를 희생하며 살아주는 사람이 어디있을까요? 고마워요"그리고 영곤이를 잘키워 줘 너무나 고마워요 절대 절대 잊지 않을거에요, 이번에 영곤이가 전교에서 2등을 하고 반에서 일등을 했다면서요 얼마나 좋은지 막내 하나둔게 이렇게 공부를 잘 하다니,..태권도도 2단을 초등학교 4학년때 따고, 웅변대회 경시대회에선 최우수상을받고, 키도 자기 또래 보다 훨씬 크고,..여학생에게 인기도 짱이다, 그럭저럭 우리가 마난지도 18년 아니 20년이 훌적 지났구나. 영곤이가 어느듯 12살, 많은 여학생들의 러브콜 때문에 걱정이 된다. 영곤아 명심해라 여자란 네가 출세 하면 줄을 선다, 성공하지 못하면 평생을 맹세한 여학생이라도 미련없이 떠난단다"우리 영곤이는 참 착하게 잘자라 준다. 아침 6시에 수영장으로 가고 하교 하고 나면 학원엘 바로 가서 저녁 9시에 집으로 온다 그러나 불평 하나 없이 잘 따라 준다, 참 기특하고 고맙다. 영곤이가 3학년때 그러니까 2년전에 유럽을 처음으로 아빠랑 해외 여행을 회사에서 보내 줘 같이 갔었다. 로마 바디칸, 부루셀, 암스텔담, 그리고 독일을 경유해서 들어 왔었다. 어린 영곤이가 시차 때문에 고생 많았다, 독일공항에서 투정을 부린 적도 있었는데 그때 내가 포근히 감사주지 못한게 두고 두고 후회된다. 내가 영곤이를 아무리 잘 해준다고 해도 몇년이나 잘 해줄 수가 있을련지? 영곤이는 아버지를 하나님께 부탁했다고 한다 우리 아버지 240까지 살게 해주세요"라고 했더니 하나님이 알았다고 하셨다고 한다. 아들이 아버지가 늙는게 걱정이 되나 보다. 영곤인 금년도 전교에서 2등을 했다. 작년엔 3등을, 그런데 초등학교 1학년때는 20등을 오르락 내리락 하였으나 난 별 걱정을 안 했는데, 어느날 아버지! 제가 아버지가 좋아하는 공부를 한번 열심히 해볼까요"하더니 그 후로 이렇게 공부를 잘한다. 그리고 영곤이는 아버지가 로망이라고 하며 아버지 처럼 되겠다고 늘 말한다. 영곤아 무럭무럭 건강히 잘 자라 주어 고맙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아들을 잘해주어야 하는데 영곤이 두살때 두성건설이 부도가 나고, 신안건설에 빌려준 돈이 연타로 부도를 맞았다. 그 여파로 아니 스트레스로 내가 병원엘 입원하게 되었는데 형편상 내가 병원에 입원 했어도 한번 찾아오지도 못했다. 그리곤 한달 후 몸이 좀 완쾌되자 영곤이 한데 갔더니 영곤이 엄마는 눈시울을 붉혔고, 영곤이는 아버지한데 오려다가 돌아서고 오려다가 돌아서니 난 눈물이 알곽 쏟아졌다. 우리 영곤인 내가 아무리 잘해준다해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 보상차원에서 영곤이를 해외를 많이 다리고 다녀야 하는데,(중국, 필립핀, 풋켓, 괌, 싱가폴, 말레시아, 인도네시아, 호주 아니 혼자서 여행한 러시아도 있구나)그래도 모자란다. 영곤이와 나는 45살 차이가 난다. 영곤이 엄마도에게도, 아니 아무 잘못이 없는 경혜엄마에게도 난 빚을 많이 졌다. 난 이 두 사람에게 두고 두고 갚아야할 빚이 졌다. 정말 잘해 주어야 한다.13시 05분(서울 시간) 손까락이 아프다 좀 쉬어야 겠다. 지나간 세월이 긴 꿈을 꾼것 같다. 스투디어스들이 부지런히 써빙을 하는것을 보니 그진 다 왔나 보다. 앞으로 30분 후면 방콕에 도착한다고 한다 창문을 열고 밖앗을 내다보니 하늘이 눈부시게 청명하다.2001년 6월 18일 월요일 16시 38분(방콕시간) 자! 방콕에 곧 도착하여 제일 먼저 내렸다. 풋켓으로 가는 국내선 게이트를 찾아 갔다. 가는길에 예쁜 아가씨가 호랑이를 안고 앉아 있다. 호랑이와 같이 사진을 찍게 되면 사진을 입체로 만들어 사진틀에 넣어 준 다기에 셋이서 호랑이를 옆에 두고 60,000원에 기념 사진을 찍다.17시 58분 탑승시간 17시에 풋켓으로 가는 게이트로 갔다. 탑승을 하자 힘차게 솟아 오른다오후 6시면 풋켓에 도착한다고 한다. 창밖의 창공은 눈이 부시다.풋켓22시 14분 풋켓에 도착하여 한식당으로 갔다. 아침까지 한식을 먹은 우린데 또 한식으로 식사를 했다. 호텔로 들어 가기 전 물과 음료수 그리고 밤에 군거질 할 과일을 사고, Beat Lagoon Resor(보트 라군 리조트)에 도착하여 438호 방을 배정 받아 들어 왔다. 기분이 어찌나 좋은지 짐을 풀어 놓고 오징어와 김, 그리고 소주를 한잔 마시고 나니 기분이 더욱 좋아졌다. 밤이 깊었지만 비디오 카메라를 메고 밖앗으로 나갔다. Resort주위 바닷가로 나기니 수 많은 요트가 즐비하다. 게구리가 구 슬피 운다 언젠가 럭키타운에 있을때 창밖 논에서 엄청 울던 개구리떼가 생각난다. 조금 지나니 풀밭에서 맹꽁이가 우는데 어찌나 정겹던지 한참을 서서들었다 어릴적 시골집 앞 칠구네 논에서 보리를 베고 모내기 준비할 때 수 없이 울어 되던 개구리떼 추억의 소리다. 영곤이는 아버지를 비디오에 담느라 분주하다. 아! 날이 밝지 않았음 좋겠다.2001년 6월 19일 화요일 06시 54분 단잠을 자고 있는데 새소리가 마치 산속에 온 것 같아 눈을 떳다. 비가 올려나 하늘이 잿빛이다. 서서히 동녁이 밝아오더니 하늘도 개이기 시작한다. 동원기초에서 앞으로 받을 돈을 생각하니 엄청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니까 내가 받을 돈이, 구정에 내 카드로 쓴 AMX카드 사용금액이 15,000,000원, 밀린 급료가 30,000,000원. 그리고 영곤네 장비투입 사용료 60,000,000원 또 퇴직금, 내 주식 대금은 그만 두고라도 이 많은 돈을 언제 어떻게 받아야 하나?07시 00분 Resort주변이 너무 아름다워 비디오에 담았다. 레스토랑으로 들어와 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았다. 우리 셋이서 해외에서 처음먹는 아침식사가 너무나 행복하다. 빵과 쥬스 그리고 베이컨을 가지고 왔다. 영곤이 엄마가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모두 모두 건강하게 해다라고 기도하면서 회사일이 막힘없이 잘 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 드렸다.10시 00분 식사를 마치고 룸으로 오기전 Resort주변을 돌며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9시가 지났지만 약속시간이 아직도 많이 남아 다시 레스토랑으로 들어가 계란 후라이, 그리고 열대과일, 커피와 우유를 갔다 먹으며 약속시간을 기다렸다.11시 00분 버쓰를 타자 푸켓시내를 달린다. 96년도에 왔다 갔는데 도무지 기억이 없다. 그러나 배를타고 바다를 달리니 눈에 익은 모습이 차츰 들어 난다. 물속에 잠겨 자라고 있는 나무며 열대나무와 기암절, 끝없이 펼쳐지고 있는 바다며, 아름다운 숲과 절벽이,..모든게 한데 어루여져 마치 수호지에 나오는 한 장면과도 같다. 아름다운 절경을 비디오에 담았다. 한시간을 달려가니 팡아만. 제임스 본드 촬영지라고 하는 섬에 도착했다 조그마한 언덕을 넘어가니 이상하게 생긴 바위섬가 우뚝서 있는데 곧 쓰러지기 직전인 섬도 아니고, 탑도 아닌게 눈에들어 온다. 이상한 섬 옆언덕길로 걸어가보았다 언덕 사이길이 나무숲과 어우려져 참 좋았다. 그리고 한참을 가니 모래사장이 나왔는데, 별 볼 것이 없다, 돌아오다 길 옆에 굴이 있어 잠시 들려 한 바귀 돈 다음 팔찌도 사고 조개껍질로 만든 목걸이도 삿다. 그리고 기념으로 아들이 좋아하는 열대 곤충과 나비 채집도 삿다.12시 30분 돌아오는길에 수상가옥, 음식점에 도착했다. 몇년전에 이곳에와서 식사를 했었다 오늘도 마찮가지 씨푸드로 준비된 태국 음식인데 어폐류 종류라 좋았다. 바다위에 지어진 수상가옥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파도를 바라보며 이것저것 뷔페를 먹는다는게 참 낭만적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큰 독수리를 어께나 손위에 언쳐놓고 사진을 찍는게 있어 같이 비디오로 촬영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14시 00분 부두에 도착하여 버쓰를 타고 호텔로 돌아 오기전에 사원으로 갔다 사원 입구엔 원숭이 떼가 놀고 있는데 어찌나 많은지? 지천이다. 좀 더 올라가니 와불이 보였다 편안히 누워 계시는 부쳐님인데 황금색으로 칠해져 있고 아주 크고 웅장하게 보이는게 이상적 이었다. 태국에서 와불을 보고 두번째 본다. 원숭이를 뒤로하고 굴속 깊숙히 들어 가니 수 많은 박쥐떼가 천정에 붙어 우굴거린다. 냄새 나는 박쥐도 찍고 원숭이도 찍었다.17시 00분 호텔로 돌아왔다, 수영복을 갈아 입고 수영장으로 갔다 셋이서 나란히 수영을 하는게 그림같이 아름다웠다. 모두들 구경하며 칭찬을 한다. 자유형 배형, 그리고 평형, 이것저것 실력발휘를 하니 구경군들이 모여 들었다. 저녁시간이 되어 룸으로 돌아와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로비로 내려갔다. 우리 일행들이 모두 나와 있었다. 이번 여행 파터너는 9명인데 6명이 아가씨들이다. 모두가 착하다. 한식당으로 갔다 맥주도 한잔하며 즐겁게 식사를 했다.18시 26분 푸켓에서 제일 번화가인 파통비취로 놀려나갔다. 밤의 무대 환라가는 호화 찬란했다. 영곤이가 아직 어려 miss pen에게 맡겨두고 성인쇼 구경을 갔다. 예쁜 아가씨들이 나와 질서정연하게 인형같이 춤을 춘다, 높다란 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이색적인 구경을 하고 있느데, 한 아가씨가 나오더니 쇼란게 음밀한 곳에서 바늘을 뽑아내는게 아닌가? 즐거움이 싹사라진다. 이것도 쇼라고 구경을 하고 있다니,.. 그리고 실이 끝없이 나오는가 했는데 이번엔 꽃이 나오는게 아닌가? 또 자기 몸에다가 촛물을 쏟아 붙는데 목불인경이다, 묘기라기보다 협오감이 느겨진다.19시 30분 세계 8대쇼의 하나인 사이먼스 게이쇼를 보려 갔다, 86년인가 태국 파타야에서 보던 쇼와 같다. 게이쇼를 두 번째 본다. 태국에서 볼때 난 남자인줄 정말 몰랐다. 여기도 매 한가지 노래를 부르는데 꼭 여자음성과 똑 같았고, 춤을 추며 들어 내놓는 그 유방이 어찌 남자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린 앞자릴 택해 앉았는데 그 아름다운 여장 남자가 영곤이 앞으로 오더니 유방을 갔다 데면서 비비는데 차마 볼 수가 없어 눈을 깜았는데 이게 우서웠는지 모든 무희들이 영곤이 앞으로 모여 유방을 흔들며 춤을 추니 장래가 폭소가 터져 모두가 배꼽을 잡고 웃는다. 오늘의 VIP는 우리 영곤이가 단연 최고 손님이 되었다. 어린 영곤이가 수줍어 하는게 너무나 우서웠는지 온 장래가 파안대소다. 1시간 20분을 관람을 하고 나올 무렵 모든 무희들에게 팁을 골고루 나눠 주었는데 밖앗으로 나오니 무희들이 앞 다퉈 영곤이와 사진을 찍겠다고 아우성이다.22시 00분 야시장으로 갔다. 이곳 저곳을 다니다 200바트를 주고 킥폭씽하는 무대로 가서 앉았다. 청팀 홍팀이 나눠 싸운데 처절하게 싸운다. 볼 수록 처근하고 불쌍했다 저들은 밤마다 보이주기 위한 싸움을 해야 한다니,.. 저렇게 맞으면서 살아가야 한다니,.. 머리가 핑 돈다 킥 폭씽을 봐서일까? 오늘 피로와 스트레스가 쌓여서일까? 찬 얼음을 타서 쥬스를 마시며 정신을 가다듬었다.23시 50분 야 시장을 구경하고 20분을 달려오니 호텔에 도착했다. 우리는 이곳에 와 아침, 저녁으로 빠지지 않고 정을 확인한다.2001년 6월 20일 수요일 06시 15분 약속 시간이 다 되었다. 자! 출발하자 P,P섬으로 간다. 오늘은 배 멀미약을 준비했다. 나도 몸이 약해졌나 보다.07시 40분 호텔에서 약 30분을 버쓰를 타고 선착장으로 나갔다. 96년에 배멀미 때문에 고생한게 두려워 이번엔 호텔에서 약을 마시고 P,P섬을 출발했다. 배를 타자 잠시 조았나 했는데 2시간이 흘렀다.10시 00분 P,P섬이 가까워 오니 풍량이 더 심해진다. 배가 몹씨 흔들린다. 돌아 갈 때가 걱정이 된다. 해적들이 살았다는 동굴에서 잠시 멈추었다. 깍아지런듯 높다란 절벽엔 제비들이 모여 살고 있는데 이 제비들이 바다 물고기뼈을 물어다가 집을 짓어 이 제비집 요리가 중국에서는 제일 비싸다고 알려져있다.10시 30분 P,P섬에 도착했다. 바다 모래알이 보석처럼 희고 아름답다 반작반짝 빛나는 금빛 모래알이 수정알 같이 아름답다. 우린 태국 가이드가 미리 자라 잡아 놓은 야자수 아래에 긴 수건을 깔아 놓고 짐을 풀었다. 탈의실이 마당치 않아 화장실로 가서 수영복으로 갈아 입고 바다로 뛰어 들어다. 영곤이와 나와 영곤이 엄마는 바다에서 폼 나게 수영을 하니 모두들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11시 30분 야회 뷔페장이다 한 줄로 서서 같다 먹어야 하는는데 태국음식이라 입맛이 맛지 않았으나 기내에서 준 고추장에 밥을 비벼먹어니 한식맛이 났다.12시 30분 배를 타고 섬 주위를 한 바귀 돌다가 열대어가 많은 곳으로 가서 스노쿨링을 했다. 그런데 물속에서 이상한 것을 보았다. 한 1m는 족히 될 크다란 물고기 등위에 상어같이 생긴 물고기가 등에 올라 타고 앉아 살을 뜯어 먹는게 아닌가? 그 큰 물고기가 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뿌리 칠 수도 없으니 온 바다를 헤메고 다니지만 그 물고기는 떨어질 줄 모른다. 그렇다고 내가 도와줄 수도 없어 안타까웠다. 등어리에 앉아 살이 뜯어 먹고 있으니 등어리가 피가 흐른다. 아무리 약육강식이라고 하지만 산 물고기위 앉아 살을 뜯어 먹고 있다니 너무나 잔인하게 느껴진다. 수영을 하며 열대어 에게 빵쪼각을 던져 주니 물고기떼가 모이는데 마치 동화속 용궁에 온것 같이 온통 물고기 천지다. 어린 영곤이가 걱정이 되어 손을 꼭 잡고 스노쿨링을 했는데 아직 모든게 서투러 바다 짠물이 코로 들어가 불만이 많더니 곧 익숙해지자 코 노래를 부르며 즐거워 한다. 수 많은 열대어와 산호초 그리고 이름 모를 기화요초들이 바닷물에 일렁이니 꼭 전설속에 들어 온 용궁 같다.14시 00분 젯트보트를 탓다. 스릴 만점이다. 파도를 가러며 나라갈듯 미끄려지듯 달리는데 그 스릴이 너무나 즐거웠다. 하늘로 치솟다가 탕하고 떨어지고 그 소리가 어찌 큰지 배가 다 부셔지는것 같았다. 한 참을 달려 보니 p,p섬도 작은 섬이 아니란게 느껴진다. 깍아 지러는듯한 언덕이 아름답다, 수 많은 인파가 스노쿨링 하느라 여기저기 배를 세워두고 즐기고 있다. 우린 스노쿨링을 하고 돌아와 다시 수영도 하고, 야자수 그늘 아래서 오징어를 안주삼아 소주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니 너무나 행복하다.15시 00분 우린 아쉬움을 뒤로하고 승선했다. 악몽같은 배멀리가 생각이 나니 겁이났다. 오후가 되니 바람이 더 새차게 분다. 파도가 높게 일고 배가 춤을 춘다. 여기서 2시간을 가야하는데 걱정이다. 한 시간을 달려왔을까?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미싱거린다. 난 자리를 잡고 앉아 눈을 깜고 잠을 청했다. 승선을 하자 곧 바로 멀미약을 먹어서 인지 금방 잠이 드었다.17시 30분 2시간을 배를 탓으나 모두들 별일 없이 도착해서 하나님께 감사 드렸다. 부두에서 내려 30분 정도 오니 면세점에 도착했다.18시 00분 면세점이 엄청 크다 한 바귀를 돌아보다가 큰 마음 먹고 기념으로 진주반지 \420,000을 주고 하나 사주었더니 무척 좋아한다. 나 역시 가슴이 뿌듯하다 불상한 사람! 예쁘고 착한 사람인데 어쩌다 나를 만나 귀도 못펴고 산단 말인가? 정말 미안하다. 나는 지금까지 해외여행을 수 없이 많이도 나왔는데 이제야 같이 나왔으니 정말 미안하다.19시 00분 호텔에 도착하여 조금 쉬었다가 저녁 약속 시간이 되어 내려갔다.20시 30분 어제 먹었던 한식당이다 우리 입맛에 맞다, 언제 먹어도 한식이 좋고 맛있다. 호텔로 돌아왔다. 아! 피곤하다 우리의 정을 다시 확인한 후 곧 잠에 빠졌다.2001년 6월 21일 목요일 06시 00분 피곤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한참을 잔 것 같은데 아직 캄캄한 밤중이다. 밖앗엔 비가 내리나 보다, 여기오고 새벽마다 비가 내린다. 영곤이가 배가 아프다고 해서 일어났다.08시 09분 영곤이가 계란 후라이를 2개를 외국인에게 말하여 요리를 해서 가지고 왔다. 똑똑한 줄은 알았지만 정말 기특하다. 난 다시 로비로가서 우리 방키를 찾아오라고 시켜더니 찾아왔다. 오늘 오전은 자유 시간이다.07시 00분 아침 일찍 영곤이가 께우길래 겨우 눈을 떳다. 간밤엔 너무나 피곤하여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몇번인가 잠에서 깻다. 밤이 정말 길게 느껴졌다. 우리는 일어나 대충 세수를 하고 레스토랑으로 갔다. 계란 후라이과 빵 그리고 치즈와 과일을 먹고 호텔 내 쇼핑센타를 돌아보았다.08시 00분 모자도 사고, 가방도 사고, 조개 껍질로 만든 공예품도 삿다. 영곤이 엄마가 행복해 한다. 오늘은 시내 관광이 있다 오늘 큰 수건이 필요해서 영곤이를 수영장으로 보내 수건을 얻어오게 하고 어떻게 구해 오는가 지켜봤다. 이제 겨우 영곤이가 10살이다. 영곤이는 수영장에서 혼자 놀게 하고 우린 쇼핑하려 갔다10시 30분 영곤이를 다리려 풀장으로 갔다. 어린 영곤이가 그간 배운 영어로 담요를 빌리고, 그늘 진곳에 자리를 빌려 혼자서 아주 재미있게 놀고 있다. 참 똑똑한 녀석이다. 우린 다시 콜라와 사이다를 사가지고 오라고 시켰더니 한치의 오차도 없이 사가지고 왔다. 너무나 기특하다. 11시까지 우리가 다시 오마 약속하고 쇼핑한 물건을 들고 방으로 갔다. 멋진 아들 영곤이가 아무탈 없이 무럭무럭 주안에서 잘 자라 주었음 좋겠다.12시 30분 오늘은 일식집으로 갔다. 아무래도 동남아 음식보다는 일씩이 훨신 좋다. 일식을 맛있게 먹고 정원으로 나갔다. 조그마하 연못이 있는 곳 인데 코푸라를 갔다 놓고 장난을 치고 있는데 물렸다 하면 즉사하는 것을 쇼라고,..젊은 사내 아이가 뒤에서 코푸라에게 약을 올리니 머릴 치켜 들고 공격 자세를 취하는데 어찌나 겁이 나는지 소름이 돋는다. 우릴 즐겁게 하기 위해 그들은 목숨을 걸고 하는쇼다. 그리고 큰 뱀을 놓으니 스르르 물속으로 들어가니 이 청년이 물속으로 뛰어 들어 한 참 후에 뱀을 잡아 나온다 모두들 박수를 쳤다. 그리고 나선 약 선전을 하는데 만병통치약이 이곳에 있다.14시 00분 코끼리트래킹을 하려 왔다. 영곤이와 나는 50$을 주고 코끼리를 탓다. 정말 이렇게 즐거울수가 있을까? 너무나 행복하다. 기념으로 비디오 촬영을 하고 사진도 찍고 시내구경을 갔다.16시 00분 푸켓시 언덕으로 올라가 시내를 내려다 보고 곧 바로 보석가공 공장으로 가서 보석가공 하는것을 직접 살펴 보고 이어 보석 상점으로 들어갔다. 진주도 보고 다이야몬드도 보고 사파이어도 구경했다.18시 00분 저녁을 마지막으로 한식당으로 갔다. 참 우리가 입맛이 별난가보다 해외 왔음 현지 음식도 맛보고 문화도 체험해야 하는데,..촌놈 입맛이 변하지 못하니 내일이면 한식으로 주야장창 먹어야 할 우리가 오늘도 역시 한식을 먹는구나,20시 47분 수속을 마치고 푸켓공항에서 막 이륙을 했다. 아! 언제 다시 올 수 있을련지? 생각했으나 벌써 두번째 왔다 간다. 추억의 푸켓이여 잘있거라2001년 6월 22일 금요일 00시 43분(한국시간 02시 43분) 서울 시간으로 시간을 맞추려다 실폐를 했다 그런데 영곤이가 시계를 맞춰 준다. 어떻게 맞추었을까? 참 놀라운 일이다. 어릴적 부터 어딘가 달랐다. 내가 못하는 종이접기로 새도 만들고 공작새도 만들고 별별 것을 다 만든다. 그리고 그림도 잘 그렸다. 한문도 자격증이 높다 정말 눈부시다 특히 어린것이 김일손 할아버지를 무척 좋아한다. 해외에서 재치있게 영어도 잘 한다 키도 찾고 음료수도 사가지고 오고 이렇게 똑똣하고 착한 아이가 혹 나 때문에 잘 못 될까 심히 두렵다. 언제나 어릴적 부터 누구편? 하면 아빠편이예요"라고 앵무새 처럼 대답하는 아이다. 아빤 250살 살아야되요 내가 하나님게 기도해서 대답을 받났어요"라고 말 할 땐 무척 가슴이 아프다. 그리고 머리가 빠지면 자기 머리카락을 준다고 약속한 아이다. 때론 아빠 아빤 외 내친구들 아빠보다 나이가 많아요?"하고 물을땐 가슴이 아파 말문이 막힐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02시 30분(한국시간) 자리가 많이 비워져 있어 여려자릴 잡아 놓고 영곤이랑 영곤이 엄마, 우린 각각 편히 누워서 간다. 즐거운 여행! 너무나 즐거운 여행이었다. 그간 기록해서 두고 싶은게 많은데 이번 여행때 시간이 많아 기록으로 남겨둬 둔다. 어린 영곤이를 생각해서라도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야 할텐데,..03시 04분 그리고 하나님 축복속에 승승장구하는 내 모습을 생각해 본다.즐거운 고민두성건설을 그만 두었다는 소문이 나돌자 여러 곳에서 스캇웃 제안이 들어 왔다. 특히 명보중건설(주)과 동원기초(주), 신안건설(주)에서 앞 다퉈어 자기회사로 오라고 경쟁을 벌인다. 명보중건설은 L/A 라스베가스 장비 전시회 여행비를 몽땅 대신 지불해 주며 넉넉하게 경비도 주었다, 동원기초에서는 천마산으로 가서 뱀탕(3,000,000원)을 보약재로 주문하여 주며 스포츠 회원건을 보내 주기도 했다. 또 신안건설에서 골프 회원권을 제시도 했다. 그런데 여러사람을 만나 본 중에 인간성이 좋다고 생각되는 분이 동원기초 사장인것 같다. 어느날 천마산엘 가자고 해서 따라 갔다. 산세도 좋고, 산골 물은 졸졸흐르고, 아늑한 외딴 집으로 안내를 하더니. 비싸고 귀한 양주를 가지고 왔는데 나를 자기회사로 모시기 위해 지극정성이다. 현대건설(주) 부사장으로 있는 정태수회장까지 자리에 합석 시키고, 중견 기업으로 대성한 최태호회장도 동석시켜 그들이 동원기초(주)를 최선을 해서 돕겠노라고 약속을 하며 해가 지도록 고스톱도 치고 술도 마시며 놀다가 헤어질 때 용돈까지 내 차에다가 몰래 넣어 놓았다. 그 후로도 여러 경로를 통해 나를 스카웃하기 위해 다 다방면으로 노력을 했다. 그리고 주식까지 드리겠노라 제안하며 실질적인 최고 경영자로 초대를 하는게 아닌가? 여러 번 만나 보았으나 인간성이 좋고 꾸밈이 없는 신사분이라고 생각이 들어 동원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그런데 직접 경영에 참여 하고 보니 사장님이 너무 소심하여 공사 금액이 큰 걸 수주해 오면 우선 겁부터 내며 자신을 잃고 결정적일 때 나도 몰래 계약을 취소 하기도 했다. 그러면 내가 얼마나 우서운 꼴이 되겠는가? 이런 일이 한 두번이 아니다. 남들은 수주를 못해 안달인데,..그렇지만 어쩔 수 없어 참고 참으며 지금까지 왔는데 이번엔 또 현대건설과 영종대교 기초공사 계약을 하여야 하는데 차일 피일 또 미르는게 아닌가? 이번에 또 실수를 하면 안 되었기에 그 공사를 은성기초에서 시공도록 하여 성공함으로 난 몫돈을 받을 수가 있었다. 그 후로 도저히 김기형사장은 나를 담을 그릇이 안되는 걸로 확신하고 다시 다른 우물을 파게 된게 은성기초다. 이번 여행도 은성기초사장이 특별 휴가를 내줘 이렇게 오게 된것이다. 그간도 음으로 양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 은혜를 꼭 갚아야 하고 이번이 나에겐 마지막 직장이라는 각오로 열심히 일해야 겠다. 지금은 아려운 IMF시대다 모든 경기가 침체되고 자고 나면 회사가 없어진다. 그렇지만 정윤아! 멋지게 한번 해보아라, 은성에다 신세를 갚아야 하지 않겠니? 귀국하면 오늘 저녁 은성기초 전 직원들과 환영파티를 열어준다고 한다. 25일 부터는 출근하기로 했다. 나는 실직 되나면 엄청 스트레스를 받을것 같은데 난 갈 곳이 많다.07시 15분 곧 서울에 도착한다 3박 4일이 꿈 같이 흘러갔다. 도착 하면 짐을 우리 사랑하는아들 경곤이에게 맡끼고 난 곧 바로 회사로 출근하여 멋지게 해볼 거다.제오십이 2001년 7월 신기술을 찾아, . .6월 26일 첫 둥지를 틀고 첫 해외 나들이. 01년 7월 27일 인천- 오사카- 동경01년 7월 29일 동경- 인천2001년 7월 25일 수요일 08시 00분 공항에서 은사장과 천교수를 마나기로 해 서둘러 갔다 벌써 우리 일행들은 모두나와 있었다.10시 00분 시간이 없어 급히 수속을 마치고 면세점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입국수속을 마치고 게이트로와 현금을 카드로 찾아 앤화로 첸지하려 했는데 세관을 통과하고 나면 카드로는 현금인출이 안 된다고 한다. 큰일이다. 현금을 가진게 없으니,..면세점으로 갔다. 경혜엄마가 부탁하는 크린씽 크림을 우선 하나 카드로 삿다. 걱정을 하며 게이트로 오니 은사장이 100,000앤을 용돈으로 준다. 와! 현금이 없어 일단 받기는 받았는데...11시 42분 몇년만에 가는가? 오랫만에 일본으로 간다. 이코노믹을 탓지만 기내에서 업그레이드하여 일등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역시 일등석은 써빙은 물론이요 식사도 다르다, 한 시간 반을 날아 오사카에 도착한다. 5년전 쯤 일본을 온것 같다. 그때도 내가 일본을 갔다 오니 동원기초 김기형사장이 내가 어렵게 TRM신기술공사를 채택시켜 영업을 해놓은 것을 나에게 상의도 없이 공사를 취소 했다고 하여 엄청 화도 나고 실망도 했던 때가 생각난다. 그러니까 내가 지난 달 6월 26일 부터 은성기초에 출근을 했다. 10년을 넘게 근무한 동원기초를 그만 두고 회사를 옮겼다. 김사장은 사람이 좋고 인품이 참 좋다 그런데 내가 퍼오는 물을 다 담을 그릇이 안된다. 벌써 몇번째인가? 큰 공사를 수주해 오면 겁부터 내고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내가 회사를 옮긴지가 오늘로서 딱 한달째다. 은성으로 오기 전에 은희성사장을 무척 내가 어렵게 생각 했는데 아주 편안하게 해준다. 진즉 왜 내가 이곳으로 안 옮겼을까? 생각이 든다. 오기전에 생각하기를 꼭 두성건설 김기수사장과 카리스마가 너무 닮았다고 생각했다. 도도하고 카리스마 넘치는게 걱정이 되었는데,..한 달이 지난지금보니 너무 편안하게 해준다.12시 00분 오사카공항에 다 닥아 오느가 보다. 스투디어스들이 부지런히 써빙을 하더니 벌써 하강을 하는것 같다. 현재 오사카 온도가 32도라고 한다. 여기를 오기 전 장성지하차도 수주를 하기위해 현장을 답사했다. 그리고 T,R,M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은사장과 이태리도 가 보기로 약속 했다. 그런데 김기형사장이 내가 없으니 장성지하차도 공사를 안 한다고 장성군수에게 말했다니 그 사람 정신이 좀 이상한 사람이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은사장과 이 현장을 답사하기 위해 장성으로 갔다, 현장을 구경하고 점심 식사를 하려 갔는데 내 생전 먹어 보지 못한 자라탕을 시켜줘 먹었다. 몸에 좋다고는 하지만 자그만치 일인당 80,000원 짜리라고 한다 맛이 꼭 닭고기와 같았다. 자라탕을 먹고 올라오며 많은 이야길 나눠있다. 그리고 오늘 고압분사 기술을 도입하고자 일본으로 간다. 동원기초에 있을 때 이테리 피코오시회사에서 삼중관식 고압분사 기술을 도입하여 SJG라 명명하여 많은 수주를 했다. 그리고 S,I,P와 R,J,P란 기술과 싸워 이기려면 더 좋은 기술을 도입해야 하는데,..좋은 기술을 도입하여 활발하게 영업을 해야 하는데,..좋은 기술이 있으면 좋겠다. 수주는 화동화력도 있고, 인천 북항도 있다 나는 수주는 자신이 있다. 그런데 일본에서 개발 되었다는 신기술이 드라이젯트면 어떻고? 그린젯트면 어떤가? 기술이 우수했으면 좋겠다. 오사카가 다 왔나보다 창을열고 내다 보니 푸른 바다가 보인다. 여호와 하나님 열심히 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옵소서"교만을 버리고 감사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은성기초에서 지금까지 도움 받은 은혜를 다 갚을 수 있게 하옵소서14시 00분 오사카공항에 도착하여 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일본 바이어가 우릴 기다리고 있어 일단 점심시간이 늦었으니 공항에서 식사를 했다. 공항을 출발하여 바이어를 따라 약속 된 호텔 미팅룸으로 갔다 바이어에게 공법을 설명 들어니 아주 좋은 신기술인 것 같다. 너무나 좋은 기술인 듯 하다. 이런 기술이라면 영업을 잘 할 수가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미팅 도중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렸다. 장몀이 또 왔나? 겁이 덜컥 났다. 지난 번 산소를 다녀 오며 장념으로 고생한게 생각이 난다. 호텔로 왔다. 방을 배정받아 룸으로 왔다. 몇일전에 8대조 송곡선생 신도비를 세운것과 산소를 아름답게 꾸민 것을 생각하니 즐겁다.송곡선생 신도비7월 14일, 송곡선생 신도비를 세웠다. 얼마나 이 비석을 세우고 싶었던 것인가? 후손에게 꼭 물려주고 픈 비석이다. 6자비를 세웠는데 웅장하고 장엄했다. 갓은 용머리로 틀어 올렸다. 비석을 세우는 날 우린 새벽 3시에 서울에서 출발하여 금강휴계소에서 잠깐 쉬고 가족묘지에에 도착하니 7시도 채 안되었다. 벌써 서울에서 내려온 비석은 도착 하였고, 그들은 우리 산소앞 제단을 세울 때 오셨던 분들이다. 아침으로 라면을 대충 끓어서 먹고 일을 시작한는데 짐이 무거워 산소까지 올라 가기가 무척 힘든다고 했다. 그래서 김천 막내 이모부한데 전화를 해서 포크레인을 불렀다. 얼마후에 포크렌인 도착하자 들어가는 길을 다듬고 젖은 길을 북돋고 하여 들어 가려는데 또 비가 내리는게 아닌가? 어제 밤에도 비가 많이 와서 땅이 젖고 미끄러워 힘이드는데,..땅이 젖어 짐차가 못 들어가 길을 다시 내고 있는데 또 비가 오다니,..어제 일기예보에 비가 많이 온다기에 공사를 뒤로 미루러다가 강행진을 했는게 잘못 되었다. 그렇게 많은 비는 아닌데 땅이 이미 젖은 터라 문제가 된 것이다. 그리고 차주가 차가 세차인지라 운전이 많이 서툴고 차를 아낌으로 더 문제가 된다. 겨우 포크레인이 앞에서 끌고 뒤에서 사람들이 밀고 올라갔다. 웅장한 비를 더디어 세우게 되었다. 아침 일찍 작업을 시작한게 11시쯤 비석이 제자리에 섯다. 나는 춤을 추고 싶었다 너무나 좋아서,..12시가 되니 동리 어른들도 오기 시작하더니 김천 군수도 왔다. 그리고 아포 읍장. 아포국민학교 동창생 20여명도 왔다. 나는 자랑스러웠다 신도비가 글자가 1,400자다. 엄청 많은 글이 올려졌다. 그리고 옆면에는 자랑스러운 전 국무총리 김종필선생 친필도 새겨져 있다. 현제도 박정희대통령 다음 서열이 아닌가? 용트림하는 용갓도 너무나 웅장하고 멋지다고, 유림들이 칭찬이 자자하다. 참여객들도 우리와 같이 일도하고 풀도 뽑고 경혜엄마랑 며느리는 음식 준비가 한창이다. 마치 시골 어느 부자집 찬치집 같이 화려하다 수많은 명망있는 손님과 존경받는 어르신들께 자랑도 하고 칭찬도 듣고, 너무너무 웅장하다 높이가 3m는 족히 됨직하다. 그리고 7월 17일, 제헌절날에 또 내려갔다. 하루 종일 산소에 머물다가 저녁에는 원골 저수지로 올라가 민박에서 하루 저녁 잠을 자고 새벽일찍 6시도 안 되 산소로 가서 풀도 뽑고, 소나무 가지도 치고 비석을 돌며 걸래로 딱기도 하고, 어루만져 보기도 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일을 하지만 힘 든 줄을 모르고 했다. 우리 후손들이 이 비석을 보고 자랑스런 선조님들의 자손들이라고 긍지를 가지고 뼈대가 있는 집안이라고 자랑하며 살길 원한다. 이번 비석은 IMF(금융위기)시대라 무척 싸게 세운 것 같다.(총액이 5,000,000원, 금 한 돈이 현 시세가 52,000원)그리고 이 비석을 계약하기전에 부근 석재상회를 두루 돌아 다니면서 견적을 받아 보니 이곳 보다 1,500,000원이나 더 비싸다. 경혜엄마가 제일 많이 금 원을 내놓았다 그리고 아들과 딸 또 영곤이와 영곤이 엄마도 그 금을 선뜻 내 놓아 더욱 좋았다. 7월 22일, 중국에 있는 경혜한데 다녀와서 일요일 또 내려 갔다. 이번엔 김천 진욱이네 작은 이모와 이모부에게 연락을 하고, 진효도 오라고 했다. 몇일 전에 차길을 정리 못한 우측 잔디밭을 열심히 평탄작업을 했다. 그런데 쉬지않고 일을 하다 보니 목이 말라 찬물을 많이 마셨더니 오후엔 장염이 와 배를 움켜잡고 대굴대굴 굴다가 너무 아파 김천도립병원으로 갔다. 이렇게 아파보긴 처음인 것 같다. 병원에 가는데 뽀족한 방법이 없어 진통제(42,000)를 한대 맞고 다시 산소로 돌아 왔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서울로 다시 올라 가는데 길이 왜 이리 먼지? 그러나 카니발을 사두었기에 전용차로로 올라 올 수가 있어 그런대로 조금이나마 빨랐다. 어제 밤에도 산소에 잠시 라도 일찍 내려 가고파 새벽에 출발하니 채 2시간도 못 잔 샘이다 지금은 배가 너무 아파 잠도 오질 않는다. 서울에 도착하자 곧 바로 중동병원으로 가서 링켈도 맞고 주사를 맞았지만 여전히 아파 숨을 쉴 수가 없다. 한 시간 넘게 링겔을 맞을 동안 밖앗에서 나를 기다리는 경헤엄마가 너무나 고맙다. 이렇게 착한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그런데 수년을 나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으니 얼마나 미안하고 애처러운지? 혼자서 얼마나 괴로웟 했을까? 내가 이렇게 못된 놈이다.21시 55분 저녁식사 대접을 2시간이나 넘게 대접을 받았다. 별로 할 말도 없는데 웃고 떠들고 하다보니 밤이 이슥해서 돌아 오는데 하늘의 별이 총총하다. 오사카 하늘은 서울보다 매연이 덜 한가 보다 별이 더 많이 보인다.22시 30분 호텔로 돌아와서 4명이서 각자의 방을 배치 받고 룸으로 들어갔다. 오사카의 밤이 깊어간다. 사방이 쥐죽은 듯 조용하다.2001년 7월 26일 06시 44분 목요일 아침, 간 밤엔 잠을 잘 잤다. 날이 훤히 밝았다. 오늘 7시 비행기로 오사카에서 동경으로 가게 되어 있다. 5시 30분쯤 일어났는데, 이생각 저 생각에 잠이 안 온다. 영업전략을 어떻게 새워야 할까? 한 치 앞이 안 보인다. 얼마나 부지런히 뛰어야 할까? 은사장 기대에 어근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일어나 서울로 전화를 했으나 연결이 안 되었다.06시 00분 서울에 들어가서 어떻게 영업을 해 볼까? 머리속으로 정리를 해 본다.07시 00분 약속시간이 되어 슬슬 내려가 책크 아웃을 하고 거래쳐에서 준비한 승합차를 타고 오사카공항으로 갔다.08시 00분 탑승 시간이 임박했다. 서둘려 티켓팅을 하고 2층 식당으로 올라가서 간단하게 식사를 했다. 게이트로 가서 탑승을 하자 피곤이 몰려와 잠에 푹빠져 버렸다,09시 30분 언제 왔는지 동경 하네다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을 벗어나 우리가 묵을 다카나와호텔로 전철을 타고 일단 가다가 시나가와 전철역에서 내렸다. 어찌나 모두들 걸음이 빠른지 등에서 땀이 났다. 지난 3월 부터 다이어트를 시작하여 77,3kg에서 71kg, 즉 6kg을 빼는데도 힘이든다. 지난 달 6월 27일 감기 몸살이 와서 10일을 알았고, 또 장염으로 인해 1주일을 아파 몸이 쇠약해 졌나보다. 서울을 떠나기 전 몸무게를 달아보니 69kg이라 깜작 놀랬다. 오늘부터 점심이든, 저녁이든, 고기든 티김이든 가리지 않고 식살 해야겠다.11시 00분 타카나화 호텔에다 짐을 맡겨두고 서둘러 장비 전시장으로 갔다. 11시가 그이 되었으니 서둘러야 4시간 정도 볼 수가 있다. 전철을 타고 30여분 가니 국제 박람회장이 나왔다.12시 00분 장비 전시장 입구로 들어갔다. 입구엔 하수도 관련 실드 기계와 우리와 아무 관련도 없는 기계들이라 별 볼것은 없지만 돌아 다니며 영곤이나 갔다 주려고 기념을 이것저것 받아 두었다. 그리고 혹 연구자료에 필요할 줄 몰라 카다록을 이것저것 챙겼더니 엄청 팔이 아파온다. 식사 시간이 되어 우릴 초청한 스쯔기상을 만나 카레로 식사를 했는데, 체 5분도 안 되 식사를 하고 5관으로 부터 4관으로 들어 가 둘러 보았다.15시 00분 이번엔 기자재와 실드기계가 있어 사진도 찍고 카다록도 챙겼다. 이곳저곳을 다니며 혹 기술개발 하는데 참조라도 될까 싶어 자료들을 욕심내어 모았더니 팔 다리가 무척 아파온다 선물 타는 재미도 솔솔하다. 오후 3시가 지나니 다리가 아파 한 발짝도 움직이 싫었다.16시 00분 다친 다리를 끌고 국제전시장역에서 전자재품들이 많은 아케하바라 상가로 가기위해 전철을 탓다. 전철을 타자 마침 자리가 비어 있어 체면 불구하고 앉아 잠시 쉬기로 했다. 아케하바라역에 도착하여 물품 보관소에 짐을 보관시키고 약속 장소까지 걸어 가는데 도저히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지만 혼심을 다 해 걸어갔다 욕심 내어 모은 카다록이 날 이렇게 힘들게 했다. 약속 장소로 갔더니 명망이 높은 박사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17시 40분 연약지반 개량에 관련하여 기술을 묻고 주고 받다 보니 2시간이 훌적 지나 버렸다. 많은 기술자료와 카다록 그리고 비디오탭을 받아 아케하바라역으로 돌아와 짐보관소에서 우리 짐을 찾아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 왔다. 호텔 방에다 오늘 받고 모은 카다록과 기술서적을 두고 로비로 왔다.18시 30분 프린스호텔에서 아다나베상이 우릴 기다리고 있어갔다. 호텔에 도착하자 우릴 맞이 하기위해 37층에다 미팅룸을 잡아 두었는데 분위기가 너무나 좋았다. 내가 마치 국제신사가 된 기분이었다. 라운지로 올라갔더니 일본측 사장과 박사, 교수 4분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가 벌떡 일어나 예의를 갗춘다. 에약 된 자리에 앉으니 동경시내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창가 인데 어찌나 황홀한지 자리 값만 해도 대단 할 것 같다. 인사를 나누고 키피와 포도주가 나 오느가 했더니 예쁜 아가씨들이 써빙을 하는데 음식 맛이 어찌나 좋은지 입에 들어 가자 삭삭 녹는 듯 사라진다. 최고의 음식인 듯 하다. 술도 최 고급이 나왔고, 대화도 아주 품위가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와 기술을 토의 하며 아가씨들의 시중을 받으며 술을 마시다 보니 꿈 같은 3시간이 흘렀다. 이국에서 이렇게 만찬을 즐긴다는게 너무나 복에 넘친다.21시 00분 복에 넘치는 대접을 받고 우리 일행은 신쭈구로 택시를 타고 왔다. 향락의 도시! 밤의 도시! 신쭈구! 별별 쇼가 다있다. 그 별별쇼를 구경하로 들어 갔는데 입장료만 일인당 4,000앤, 써비스와 술값을 합치면 엄청 날 것 같다. 아주 즐겁게 놀았지만 날 위해 은사장이 이렇게 많은 돈을 아낌없이 쓴다, 귀국하면 멋지게 해봐라 정윤아! 좋은 기술을 가지고 말이다"난 자신이 있다. 정윤아 화이팅! 신나가와호텔로 택시를 타고 왔다. 잠깐 동안 4,300앤(한국돈 50,000)이 나왔다. 왕복 택시비가 100,000원이 나온 샘이다.2001년 7월 27일 금요일 새벽 01시 20분 아! 엄청 피곤하다, 전시회장을 돌면서 모은 카다록을 정리하다보니 밤 12시가 휙 지나 버렸다. 너무너무 피곤 하구나!02시 00분 어제 하루 일들을 기록하고 절리하다 보니 2시가 되었구나 이제 잠이나 자자! 배속이 꼬르륵한다. 잘자거라 내 새끼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아!06시 00분 4시간도 채 못자고 일어나야 했다. 공법 이름을 어떻게 지을까? 일은 어디서 부터 수주 해야할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이 오질 않는다.08시 00분 세수를 하고 잠깐 누웠는데 잠이 들었나보다. 눈을 뜨니 8시가 막 지나간다. 불야불야 서둘려 레스토랑으로 내려갔다. 모두들 내려와서 식사를 하고 있어 빵과 우유 그리고 어폐류를 접시에 담아 가지고 우리 일행 곁으로 갔다.09시 10분 아침 식사를 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서울로 전화를 했다 몇일도 아닌데 아주 오래 된 것같다. 창을 열고 밖았을 내다 보니 하늘이 우중충하다. 비가 올려나? 날씨가 후득찌근한게 서울하곤 아주 다르구나 일기예보에 기온이 35도나 올라간다고 한다. 잠이 모자라 10분이라도 더 잠을 자고 싶으나 잠이 안 와 일어나 로비로 내려 갔다.09시 30분 D,J,M기술 도입 관련 하여 회의실을 빌려 회의를 했다. 드라이젯트 기술이란게 그제 들은 기술이랑 별반 다른게 없다. 도입 하는것도 그리 쉽지 않을듯 하고 영업 범위가 그리 많지 않아 보이고 해서 그만 두기로 했다. 서둘러 전시장으로 갔다.11시 00분 전철을 두번이나 갈아 타고선 전시장에 도착했다. 쉴드기계 기술자료가 있어 챙겨 두었다. 그리고 전시장을 2시간을 다니며 필요한 자료를 챙기다 보니 짐이 한 봇따리다.15시 00분 크린젯트를 개발한 일특건설회사로 갔다. 이 기술은 작년 중부 내륙 고속도로에 동원기초에 있을 때 개발 한 SIG공법 기술로 채택하여 시공까지 하기로 했으나 태화강재의 로비력에 밀려 50억 공사를 착공직전에 아깝게 놓친 그 기술이다. 그때 내가 설계부터하여 시공까지 하도록 다 만들어 놓았는데 놓쳤다. 동원기초에서 그만 두었지만 사장의 대처 부족으로 놓쳐 너무나 아깝다. 은성기초라면 절대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돈 이란게 뭔지?16시 00분 회의를 마치고 동경역앞에 있는 흑색건물인 기술서점으로 갔다. 이것저것 구경하고 책을 보다 보니 한 시간이 후딱 지나 버렸다. 일본인이 저작한 한국역사책도 있어 읽어 넘겨 보기도 했다. 역사를 외곡하여 중학교 역사책에 실었다니,...어쩜 이들이 하는짓 들이,... 2층으로 내려와 창가에 앉아 차도 마시고 쉬기도 했다,18시 00분 아다나베상을 만나저녁을 같이 했다. 그런데 일식이 우리 입맛에 맞으니 외일까? 집건축 양식도 비슷하고, 어순도 같고 쌀을 주식을 하는 것도 같고,...19시 00분 식사를 끝내고 일본 도꼬에서 가장 화려하다는 긴자 거리로 나갔다. 고급상품이 즐비하다. 거리를 다니다가 가라우께 노래방이 보여 들어갔다. 나는 환경이 여의치 않아 노래를 배울 시간이 없었다. 그저 아는게 이미자씨의 섬마을 선생, 그리고 오기택씨의 고향무정 정도다 박자는 잘 맞지 안치만 노래를 부르며 기분을 풀고 스트레스도 풀었다. 노래방 도우미 아가씨랑 즐겁게 같이 노래도 부르다가 흥이 나 다시 신쭈구로 갔다.22시 00분 야생마들이 우굴 거리리는 신쭈구! 환락의 도시 신쭈구! 밤의 도시 신쭈구다. 사람이 사람 같지 않고 여자가 여자가 아니다. 모두가 사람의 탈을 벗고 챙피함이 없는 거리다. 특히 우리 한국 아가씨들이 여기 와서 환락가에 몸을 던진다는게 가슴 아프다. 한켠으로 가니 라이브쇼 공연을 하고 있어 50앤을 주고 입장을 했는데,...23시 30분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 왔다. 사방이 쥐죽은 듯 조용하다, 어제도 오늘도 은사장이 너무나 나에게 파격적인 대접을 한다. 자리에 눕자 얼마전 산소에서 일했던 것이 생각난다. 조상님의 산소를 생각하면 너무나 즐겁다 아무리 힘들다가도, 화가 나다가도, 일이 지루해도, 아니 무료해도, 웃음이 나고 즐겁다. 이번에 우리 딸도 온다니 또 가야지! 7월 14일 비석을 세우고, 17일 제헌절 날 가보고, 지난 주도 갔다. 그리고 현곤이도 갔다, 그 먼 길을 자주도 갔다.2001년 7월 28일 토요일 날씨 흐림, 00시 30분 아! 피곤하다. 신쭈구를 한 바귀 돌고 오니 12시가 지났다. 지난 밤에도 4시간 밖에 못 잤다. 은사장이 내 얼굴이 여위다고 한다. 한 번 위장이 탈이 나니 회복이 늦어진다. 설사도 나고 밥은 입맛이 없고, 그러나 오늘 저녁은 밥을 많이 먹었다. 살이 찌드라도 우선 건강해야 겠다.07시 42분 오랫만에 잠을 푹잤는데 지금도 졸린다. 이곳 동경은 35도를 오르락 내리락 한다. 참 날씨가 무덥다. 구름은 끼었지만 오늘은 얼마나 더울련지? 그렇지만 요 몇 일은 날씨가 그렇게 덥지 않았다. 어제로 모든 공식 일정은 마무리가 되었다. 오늘은 은사장이 빠지선을 구매 하기 위해 바다로 견학을 간다고 하였는데, 천교수와 나는 별 관계가 없어 보여 불참하기로 했다. 우린 다시 아케하바리갔다. 유행이 지난 전자 재품을 찾아 살까 한다. 마호병, 보온 도시락, 카셋트, 워크맨 등, 은사장과 항구를 다녀 어면 오후엔 시간이 날 것 같지만 힘이 들것 같아 그만 두었다. 구두 끈이 끈어지니 밑창 지압용으로 깔아 놓은 깔판 때문에 더 발이 아픈 것같다.09시 21분 은사장과 바닷가 구경을 가려다가 승용차가 자리가 없다기에 천교수랑 자유시간으로 보내기로 했다. 우리 두 사람은 당초부터 같이 갈 생각이 없었는데 잘 됬다. 은사장이 돈을 덤뿍 주어 선물도 사고, 동경 시내도 구경하고,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보아야 겠다. 생각하니 어느새 내가 며느리도 보고, 손녀 딸도 생기고 할아버지가 되어 있구나, 정윤야! 출세했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명성도 얻고"그리고 이곳 또한 어딘가? 그 유명한 역사의 현장, 김대중 대통령 납치사건이 이뤄진 그랜드 팔래스 호텔이 아닌가?그랜드 팔레스 호텔 (김대중 납치사건)김대중 대통령 납치사건 전 호텔도코에서 한민통"결성을 앞둔 1973년 8월 8일 통일당 당수 양일동을 만나러 그랜드 팔레스 호텔로 간 김대중을 괴한들이 이곳 그랜드 파레스 호텔에서 납치 하였다. 이 후 선박 용금호에 감금하여 동해로 압송도중 수장을 하기로 되었는데 미국 정보국에 의해 129시간 만에 8월 13일 자택에서 풀러났다. 당시 이 사건을 조사하게 된 일본 경찰은 요원들의 지문을 확보하여 한국에 그들의 출두를 요구 했으나 한국정부는 강력히 부인하고 협조를 거부하였다. 이로 인하여 이 사건은 한국 공권력의 의한 일본 주권의 침해라는 한일간의 외교 문제로 비화 되었다. 김대중 납치10시 00분 아키하바리로 가기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아있어 쉬었다가 출발했다. 이호텔에서 가까운 시나가와역으로 가서 30분 정도 전철을 타고 가면 된다. 벌써 내가 이 곳을 몇 번째 가는가? 그런데 와 보면 올 때 마다 전철역 출구가 다르다. 아키하바라리로 갔다 경헤엄마가 부탁하고 내가 좋아 하는 색상과 디자인으로 보온통을 구매하려면 한국 돈으로 400,000원이 있으야 되겠다. 옛날 엔 환율이 좋아 살 만 했는데,...I,M,F 이 후 환율이 작난이 아니다. 그러나 기분도 좋고 돈도 넉넉히 받았으니 카메라, 비디오 카메라 그리고 녹화 테잎 등을 아주 싸게 잘 삿다 6개를 22,000 정도 주었으니,.. 워크맨, 보온도시락, 체온계, 코털 깍는 면도기도 몇개, 를 구매했다. 시장을 온통 다니며 구경도 하고 쇼핑도 하다 보니 점심시간이 훨신 지나 버렸다.14시 00분 생선초밥집으로 갔다. 시장도 하지만 일식초밥은 한국에서도 유명하지 않는가? 아주 맛있게 먹었다. 식사를 하고 났으나 은사장과 6시에 약속이 되어 있어 또 신쭈구로 갔다.15시 40분 신쭈구를 돌아 다니다가 몸도 쉴겸 체험도 할겸 일본 싸우나로 들어 가 보았다. 입장료가 1,200앤이니 한화로 13,000원 정도 된다. 환경도 그리 좋지 않고 바닥은 더럽고 비끄럽고, 영불쾌 하다. 그러나 서울에서 보지 못했던 기구들이 있어 이것저것 구경도 하고 체험도 해보았다. 그리고 안마의자가 있는데 서울에서는 없던 기구가 있어 의자에 앉아 쉬어는데 잠이 스르륵 왔다.17시 00분 싸우나를 나와 신쭈구 골목을 다니다 보니 섹스샆이 있어 신기해 들어 가 보았다 이 것 또한 한국에서 한 번도 안본 물건 들이 참 신기했다. 신쭈구역으로 왔다. 물품 보관소에서 짐을 찾아 전철을 탓는데 안자 마자 잠이 들었다. 어제와 그제는 잠을 통 자지 못 했으나 간밤엔 잠을 푹 잘 잤는데도 잠이 온다. 시나가와 역까지는 30분 가량 가야 하는데 30분이 눈 깜짝하는사이 도착했다.18시 00분 아픈 다리를 끌고 호텔로 향 하는데 길에서 은사장을 만났다. 은사장이 나를 위해 발모제와 삼푸를 사가지고 왔다. 너무나 감사하고 고마웟다.19시 00분 김대중 대통령 납치 사건이 이뤄진 바로 호텔 앞 고급 레스토랑으로 갔다. 오늘이 마지막 만찬의 날이라 저녁을 고급 스런 식당에다 멋지게 대접을 하기 위해 은사장이 예약까지 미리 해두었는데 천교수가 신쭈구로 가서 먹자고 하여 전철을 타고 갔다.20시 00분 도착하여 보니 97년도 천교수 제자들과 같이 온 불고기 뷔페집이다. 김치와 고기를 양껏 갔다 먹을 수 있는 곳이지만 시간은 제안을 한다. 자리를 잡고 앉자 은사장이 스페살 고기를 준문하여 고기 부위가 연하고 아주 비싸고 좋은 쪽으로 덤뿍 가지고 와서 맜있게 먹었다.22시 30분 배부르게 식사를 하고 나오니 출구에서 루마니아 여자들이 라이브쇼를 한다기에 가보기로 했다. 입장료가 일인당 50,000원이라는데 주고 입장을 했다. 전라로 무희들이 나와 무대에서 춤을 추고 노래도 부르는데 아주 성의끝 한다. 그들을 불러 옆에 앉히고 이런 저런 이야길 하며 노는데 남자들은 술을 마시는\건 제안을 받지 안니만 여자들은 한 잔에 5,000원을 받는다고 한다. 아가씨들이 술을 많이 마셔 아까운 생각이 들었지만 서울에서 팁으로 생각하면 아무것도 안닌데,,,,서울 강남엔 술 시중만 들었다 하면 100,000원이 아닌가? 체험삼아 들어 오긴 왔으나 별료 재미가 없어 일찍 암치 나와 버렸다.23시 00분 루마니아 아가씨들과 술을 마시며 놀다가 재미가 없어 나오니 중국아가씨들이 나란히 서서 맛사지를 받고 가란다. 피곤도 하고 호텔에서 쉬고 싶었지만 안마를 하면 개운 할것 같다며 은사장이 기여코 들어 가자고 하여 들어갔다. 일인당에 160,000이란다 와! 너무비싸다. 난 들어 가고픈 생각이 전혀 나질 않았는데 은사장이 벌써 입장료를 계산을 했다. 들어가 맛사지를 받다가 금방 잠이들었는데 이들이 안마를 했는지 그냥 수늉만 했는지 전혀 알 수 없어 돈이 너무아까웠다. 그러나 팁을 주고 나와야 하니 정말 정말 아까운 생각이 들다. 택시를 타고 호텔로 왔다 탓다 하면 50,000원이다 왕복 100,000원이 눈 깜짝 할사이 휙 날아 난다. 아! 피곤 하다 잠이나 자자!2001년 7월 29일 일요일 01시 08분 아! 정말 피곤하다. 피곤 하지만 호텔에 도착하여 오늘 일을 정리해야 한다.08시 30분 오늘 귀국을 해야 하는데 서울엔 비가 많이 온단다. 여기 와서 3일간 동경 날씨는 참 좋았다. 오늘도 구름이 짠득긴게 바람이 부니 쉬원하다. 삼복 더위에 더위를 피해 피서를 온 것 같다. 3일간 잘 쉬었다 간다. 그래도 오사카보단 동경 날씨가 쉬원해 좋았다. 레스토랑으로 갔다. 역시 고급호텔이라 양식도 있고, 일식도 있고, 한식도 있어 좋았다. 지난 번 산소 갔을 때 장염이 걸려 애를 먹었는데 아직고 겁이 난다. 쉬원한 맥주도 삼가 했고, 고급양주도 안 마셨다. 무조건 아무거나 다뜻하게 하여 먹고 마셨다.12시 10분 다리가 무척 아프다 고등학교때 다친 다리가 아직도 휴유증이 있어 아프다. 오늘 사랑하는 우리 딸이 중국에서 들어 온다는데,..보고